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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14.(토) 20:00~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2005년 쇼팽 콩쿨에서 우승을 한 것도 모자라 4개의 특별상을 휩쓴 라파우 블레하츠(Rafal Blechacz)의 첫 내한공연이 열렸다.

얼마 전 시향공연에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연주한 피아니스트-Alexander Romanovsky-에게 크게 감명 받은 뒤 클래식 세계에 입문했기에 나의 클래식 관련 지식은 아직 햇병아리 수준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런 나도 블레하츠의 명성은 귀가 따갑도록 들을 정도였다. 나는 아직도 그가 쇼팽 콩쿨 파이널에서 연주한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처음 들었을 때의 그 감동을 잊지 못한다. 그의 연주는 내게 마치 새로운 세계를 만난 것 같은 충격을 안겨주었었다. 그런 블레하츠의 첫 내한공연이라니! 클래식, 특히 피아노 팬으로서 이번 공연에 대한 기대가 무척 컸다.

(공연장 앞에 있던 포토월, 나도 저 앞에서 사진 찍고 싶었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간신히 저 사진 한 장 건졌다)

 

클래식 공연은 이 전에 시향 공연을 몇 번 가본 것 이외에는 크게 경험이 없는지라 혹여 주변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심지어 기침약을 챙겨 먹을 정도로 나름 만반의 준비를 해 갔지만 어쩐지 긴장이 됐다. 자리에 앉자 더욱 긴장해서 내가 공연을 보러 온 것인지 음악 시험을 치러 온 것 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긴장의 이유 중 하나, 가까이서 보고 싶어서 예매한 자리지만 실제로 앉으니 너무 가까워서 부담스러운 느낌도 들었다)

 

이 날의 프로그램은 얼마 전 발매한 바흐 앨범에 수록된 네 개의 듀엣을 비롯해 베토벤, 쇼팽의 곡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전체 프로그램, 앵콜은 Brahms intermezzo op.118 no.2 )

 

공연 시작 시간인 8시가 조금 지나자 무대 위에 있는 피아노에 조명이 환해지더니 연미복을 차려 입고 화이트 나비넥타이를 맨 블레하츠가 미소를 띈 채 등장했다. 관객석과 합창석까지 두루두루 인사를 한 블레하츠가 피아노 앞에 앉아 호흡을 가다듬은 뒤 연주를 시작한 첫 곡은 바흐의 네 개의 듀엣 중 BWV802. 사실 내게 있어 바흐의 곡은 유명한 몇몇 곡들을 제외하고는 선호도가 덜한 편이었다. 아직 클래식에 입문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지 바흐의 곡은 끝없이 이어지는 것 같은 멜로디가 어렵고 지루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연장에서 판매하는 블레하츠의 바흐 앨범을 살까말까 고민하다가 사지 않고 입장했었다. 그러나 모두 숨죽여 주목하는 가운데 울려퍼지는 바흐의 곡은 음 하나 하나가고운 빛깔을 띄고 생동감 있게 살아 움직였다. 그의 연주를 감명깊게 들은 나는 당장 인터미션 시간에 나가서 앨범을 사버렸다. 내게 바흐 연주라 하면 어쩐지 오랫동안 파묻혀 있다 발굴해 낸 케케묵은 유물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블레하츠 특유의 반짝이고 생동감 있는 음색으로 해석해 낸 바흐의 곡은 나같은 클래식 초보자에게도 거부감이 없었다. 블레하츠는 어렸을 때 바흐의 곡들로 음악공부를 시작했고 피아노를 선택하기 전에는 오르간 연주자가 되고 싶었다고 한다. 쇼팽 콩쿨 우승 후에 내는 첫 음반으로 바흐를 생각했을 정도-실현되지는 않았지만-로 그에 대한 사랑이 남다른 블레하츠의 연주는 내가 바흐를 좋아할 수 있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블레하츠가 연주하는 쇼팽이야 두말할 필요도 없지만, 쇼팽 피아노 소나타 2번 4악장 또한 블레하츠 덕에 다시 보게 되었다. 사실 4악장은 들을 때 마다 어디를 어떻게 감상하면 좋을지 알 수 없어서 고민했었다. 그래서 제일 마지막 부분의 강렬한 타건이 없이는 끝났는지 어떤지도 알 수 없을 정도로 무관심한 부분이었는데 블레하츠의 연주는 난해한 4악장을 어떻게 감상하면 좋은지 알려주는 것만 같았다. 나로서는 의미 찾을 수 없었던 음들이 블레하츠의 손에서 제 가치를 찾아 나름의 의미를 지닌 채 연주되었고 어렵기만 했던 4악장은 마치 처음 듣는 것 처럼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이번 공연에서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면 처음 가는 피아노 리사이틀에서 행여나 내가 다른 사람에게 민폐를 끼칠까봐 걱정이 되어 너무 긴장을 했었다는 점이다. 긴장한 나머지 온전히 음악을 즐기지 못한 것 같은 느낌도 든다. 그래도 이번 경험을 밑거름으로 다음번에는 긴장을 풀고 연주자가 표현하고자 하는 음악을 좀 더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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