쾰른방송교향악단의 압도적인 시벨리우스
2018.05.11.(금) 19:30~
대구콘서트하우스 그랜드홀
표를 예매할 때 프로그램을 잘못 봤다.
그래서 처음에는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과 베토벤 교향곡 2번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 다른 연주회 예매를 위해 홈페이지에 들어갔을 때 프로그램을 잘못 알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고, 이 전에 시벨리우스 교향곡 2번을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예습삼아 여러 연주를 들어보았다. 그 중에서는 마에스트로 번스타인과 빈 필하모닉의 연주에 가장 손이 많이 갔는데 다른 연주보다 다소 무겁고 느리고 과장된 부분이 있긴 해도 그만큼 4악장에서 주는 감동이 컸기 때문이다. 이렇게 시벨리우스 교향곡 2번에 빠져들게 되면서 쾰른방송교향악단과 마에스트로 사라스테는 어떤 연주를 들려줄지 기대감 또한 점점 커져갔다.
첫 곡은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협연자는 아라벨라 슈타인바허였다.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그 날 연주에 대한 기대감은 수직 상승했는데 그 이유는 실연으로는 여태 들어본 적 없는 힘 있고 안정적인 관악파트 때문이었다. 연주가 시작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오케스트라가 여기 상주 오케스트라면 프로그램이 어찌되었든 매달 들으러 오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20여분간의 인터미션이 지나고 드디어 기대하던 시벨리우스 교향곡 2번. 오케스트라 가장 뒷 줄에 협주곡 연주 시에는 없었던 트럼본, 튜바 연주자들이 추가로 등장한 후 연주가 시작되었다.
내가 아는 것 보다 다소 빠른 템포로 연주가 시작되었는데, 1악장부터 현악, 관악, 타악할 것 없이 힘 있게 몰아치기 시작했다. 손에 땀을 쥐게할 정도로 흡입력이 있어 관객의 집중도 또한 악장 사이사이에도 떨어지지 않고 잘 유지된 편이었다. 이번에는 2층에 앉아 있었는데 사운드도 좋았고 무엇보다 양쪽에 앉으신 분들이 집중력이 좋은 분들이라 나 또한 오롯이 음악 감상에만 열중할 수 있었다.
마에스트로 사라스테가 지휘하는 시벨리우스는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거침이 없었다. 빠르게 질주하면서 만나는 장애물은 넘거나 피하는 것이 아니라 정면으로 부딪혀 쓰러뜨리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유려하게 흘러갈만한 부분도 잔꾀부리지 않고 힘있게 치고 나가면서 곡이 절정으로 치달을 수록 runner's high에 가까운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했다.
그런 연주를 하려면 오케스트라의 기량 또한 뒷받침이 되어야 하는데 쾰른방송교향악단은 그 어떤 파트 하나 뒤쳐지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특히 관악파트에 감동을 큰 받았다. 유명 오케스트라의 실연을 감상해본 경험이 없어서 더 그렇겠지만 쾰른방송교향악단의 관악파트는 거의 신세계에 가까웠다. 일례로 나는 플루트가 맹렬하게 몰아치는 현악파트를 뚫고 나올수 있을 정도로 소리가 큰 악기라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뿐만 아니라 긴 호흡으로 끊기지 않게 연주하면서도 마지막으로 갈수록 음에 힘을 실어 줄 수 있는 관악주자들의 뛰어난 기량은 혀를 내두르게 했다.
4악장은 감동과 환희로 가득찼다. 특히 곡의 피날레에서는 모진 비바람을 뚫고 마침내 도달한 이상향의 초입에서, 그 문을 열고 쏟아지는 빛을 받으며 한 발짝씩 걸어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연주였다.
연주가 끝나자 장내는 -식상한 표현이지만-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성'으로 가득 찼다. 여기 저기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브라보 소리와, 흥분과 감격이 뒤섞인 환호성과, 재주좋은 누군가의 휘파람 소리로 공연장이 들끓었다. 마에스트로 사라스테는 오케스트라 단원을 일으켜 세워 인사하게 했는데 모두가 엄청난 호응을 받았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트럼펫, 트럼본, 튜바 파트가 일어서자 깜짝 놀랄 정도의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감동이 채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앵콜은 두 곡을 했는데 두 번째 곡이 독특하면서도 어딘가 익숙하다 싶더니 -마치 '아사달과 아사녀'를 들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이윽고 그 곡이 다름 아닌 '아리랑'임을 알게 되었다. 시벨리우스의 감동에 더해 그들의 마음 씀씀이에 더욱 매료당할 수 밖에 없었다.
쾰른 사람들이 부럽다는 생각을 하며 공연장을 나서는데 박수를 얼마나 세게 쳤는지 손에 통증이 가시질 않았다. 혹 박수치다 손톱이 손바닥에 부딪혀 어디가 찢어지기라도 했나 시뻘건 손바닥을 꼼꼼히 살펴보기까지 했다. 앞으로 '시벨리우스 교향곡 2번'하면 자동적으로 쾰른방송교향악단과 마에스트로 사라스테가 생각날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