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후의 방랑

봄 반, 겨울 반. 신불산 간월재

떠돌이 클덕 2019. 3. 17. 19:25

2019.3.16(토)

 

 

원래는 좀 더 본격적인 산행을 해보고 싶었는데,

전날 때 아닌 눈이 오는 바람에 급히 행선지를 바꿔 신불산 간월재에 다녀왔다.

배내 제2공영주차장에 차를 대고는 등산로 입구가 어딘지 몰라 좀 헤맸다. 

등산로 입구는 주차장 건너편의 어떤 음식점 뒤에 있었다.

표지판도 크게 눈에 띄지 않아서 처음 오는 사람들은 찾기 어려울 듯 했다.

 

(오르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찍은 사진, 산에 드리운 구름 그림자를 찍고 싶었는데 사진엔 잘 안나왔다)

 

등산로는 크게 가파르지 않았고 길도 잘 닦여 있어서, 그리 힘들진 않았다.

다만 눈이 쌓인 길이 있어 다소 미끄럽고 질척했다.

그러나 덕분에 설경을 감상할 수 있었으니 그 정도 불편은 감수할만 했다.

등산로 초입부에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는데, 오르다 보니 다른 등산객도 제법 보였다.

다람쥐도 보고, 괜히 길섶에 쌓인 눈도 뭉쳐보고, 친구와 수다도 떨며 오르길 1시간 30분 정도. 무난하게 간월재 정상에 도착했다.

 

(때 아닌 눈과 고드름 구경)

 

(도중에 만난 다람쥐, 뭘 그렇게 맛있게 먹니?)

 

정상에 도착해서 보니 영남 알프스라는 이름이 왜 붙었는지 알 것 같았다.

정상 주위 펼쳐져 있는 넓은 억새밭, 스위스 전통가옥의 모양을 본따 만든 건물-알고보니 공중화장실이었다-, 그리고 억새밭 주변을 감싸고 있는 침엽수림까지. 거기에 어제 내린 눈까지 더해져 더욱 멋진 풍경을 이루었다.

 

(정상에 도달하기 직전)

 

(간월재 정상)

 

정상에 올라 자칭 컵라면 맛집이라는 매점에서 작은 컵라면을 사서 친구가 가져온 삶은 달걀과 함께 먹었다. 비록 바람이 많이 불어서 콧물은 좀 흘렸지만, 추운데서 먹어서 그런지 더욱 꿀맛이었다. 친구는 사람은 2명인데 달걀을 홀수로 가져와 미안하다며 남은 달걀 하나를 손으로 나눴는데, 자로 잰 듯 정확히 반으로 갈라 깜짝 놀랐다. 어우, 솔로몬인줄...

 

(저 작은 컵라면이 하나 이천원! 그래도 맛은 있었다)

 

배도 채웠겠다, 생각보다 등산이 빨리 끝나서 어떡할까 하다가, 옆 쪽으로 보이는 길-목재화석 가는길? 정확히 명칭은 기억나지 않는다-로 올라가보기로 했다.

그러나 이것이 악몽이 시작이 될 줄이야.

간월재 정상까지는 약간 힘든 산책정도의 난이도였다면, 여기서부터는 중,상급자 코스라 봐도 무방하다.

가파른 계단이 이어져 나의 심폐기능을 시험하더니, 나중엔 계단마저 없어지고 그저 로프와 바위가 있을 뿐이었다.

제발 미끄러지지만 말자고 간절히 기도하며 오르고 또 올라도 뭔가 다 왔다는 표시가 될 만한 것이 하나도 보이질 않았다.

온갖 용을 써가면 가다보니, 계속가면 배내봉이 나온다는 안내표지판이 나왔다. 뭔가 잘못됐어...

영남알프스를 종주하기엔 우리의 체력과 장비가 너무 비루했기 때문에, 친구와 나는 그쯤에서 만족하고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

 

(멀리서 볼때는 좋았는데...)

 

(얼떨결에 영남알프스 종주할뻔... 그래도 설경은 멋지다!)

 

'하필이면 등산을 하려고 계획을 했는데 눈이오다니!' 하며 안타까워했었는데, 눈이 온 덕에 같은 장소에서 여러 계절을 느낄 수 있어 오히려 행운이었던 것 같다.

간월재까지는 길도 좋고 오르기도 어렵지 않으니, 가볍게 자연을 느끼고 싶은 날 시도해보면 좋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