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스 넘치는 지휘자와 유려한 현악 선율의 모스크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2017.11.26.(일) 17:00 대구콘서트 하우스 그랜드홀
몇 개월 전부터 손꼽아 기다리던 모스크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연주회에 다녀왔다.
서울까지 가지 않고도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6번 '비창'과 바이올린 협주곡을 모스크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들을 수 있는 좀처럼 잘 없는 기회였다.
원래 로미오와 줄리엣 서곡과 비창을 연주할 예정이었지만 변경에 변경을 거듭하여 최종적으로 오늘 연주한 곡들은 Tchaikovsky Opera 'Eugene Onegin' 중 'Polonaise' , Violin Concerto D major, Op. 35, Symphony No.6 in B minor, Op. 74였다.
지휘자인 마에스트로 유리 시모노프(Yuri Simonov)는 멋지게 센 백발이 인상적이었는데 첫 곡인 폴로네이즈에서 실제로 춤을 추는 듯한 동작을 하여 더욱 보는 재미가 있었다. 금관 파트가 조금 부정확하게 들리는 감이 있었지만 곡의 흥겨운 느낌을 잘 살려서 연주회 전체에 대한 기대감을 고조시켜주었다.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은 작곡 당시에는 한슬릭 등의 평론가들에게 혹평을 받기도 하고 특히 솔리스트에게 너무 고난도의 연주기교를 요구하는 곡인 나머지 연주자들이 연주를 고사하기도 했지만 그 후 하이페츠나 오이스트라흐 등 구소련의 비르투오소들이 연주하면서 현재는 대중의 사랑을 듬뿍 받는 곡이다. 나 또한 프로그램이 로미오와 줄리엣 서곡에서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바뀌었을때 쾌재를 불렀을 정도이다. 솔리스트는 러시아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 세르게이 크릴로프(Sergei Krylov)였다. 제법 날카로워보이는 사진 속의 인상과는 달리 실제로는 자유분방한 헤어스타일의 푸근한 인상을 가진 분이었다. 솔리스트는 처음부터 끝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연주했으며 오케스트라의 서포트 또한 훌륭했다. 특히 1악장에서 현악파트가 연주하는 선율은 말문이 막힐 정도로 유려하고 감동적이어서 몇 번이나 울컥하는 것을 참아야했다. 비단 바이올린 협주곡에서 뿐만 아니라 전체 프로그램에서 모스크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현악 파트는 기대 이상으로 흡족한 연주를 들려주었다. 연주를 마치자 기립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장내는 호응으로 들끓었고 솔리스트가 두 번의 앵콜을 마친 후에야 인터미션에 들어갔다.
비창은 차이코프스키가 스스로 '일생에서 가장 훌륭하고 진지한 작품'이라고 평했던 곡일 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그의 교향곡 중에 가장 널리 알려진 곡이기도 하다. 첫 곡에서 다소 불안한 모습을 보였던 금관 파트도 훨씬 정돈된 느낌이었고 전체적으로 이전 두 곡보다 합이 잘 맞는, 조화롭고 안정된 연주였다. 1악장을 감상하고 있자니 이 공연에 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비창을 듣는 내내 나는 부분 부분 감동으로 울컥하는 것을 참아가며 들어야 했다. 마에스트로 시모노프는 지휘에 거의 마임에 가까운 제스처를 섞어 그 부분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오케스트라와 관객에게 더욱 쉽게 전달해주었다.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갑자기 잦아드는 부분에서는 팔과 어깨에 힘을 툭 빼서 마치 좀비같은 포즈를 취하기도 하고, 손과 팔을 W자로 물결치듯이 움직여 관악 선율을 표현하기도 했다. 사실 오늘 마에스트로 시모노프가 보여준 재치 넘치는 모습은 이게 다가 아니다. 비창 3악장은 관객을 시험에 들게 만드는 악장이다. 알고 들어도 3악장이 '콰콰콰쾅!'하고 엄청난 기세로 끝나는 그 순간, 너무도 박수가 치고 싶어지는 것이다. 유튜브에서 실연을 몇 개 찾아 보면 알 수 있지만 3악장이 끝난 뒤 여기저기서 박수가 터져나오는 경우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1부에서 바이올린 협주곡 1악장이 끝나고 산발적인 박수가 터져나오는 것을 경험한 마에스트로 시모노프는 비창 3악장이 끝나고 몇몇이 박수를 치기 시작하는 순간, 양팔을 크게 휘두르며 곧바로 4악장을 시작했다. 그의 센스 덕에 비창은 도중에 브라보까지 외치는 대형 참사(?) 없이 무사히 마무리 되었고 열띤 호응에 힘입어 두 개의 앵콜을 한 후 거의 2시간 30분에 가까운 공연을 마쳤다.
전체적으로 흡족한 공연이었다. 특히 지방에서는 해외 오케스트라의 공연을 접하기가 힘든데 대구 콘서트 하우스의 월드 오케스트라 시리즈 덕분에 서울까지 가지 않고도 여러 오케스트라의 공연을 관람할 수 있게 되어 개인적으로 무척 만족스럽다. 향후 이런 기획이 활성화 되어서 지방의 문화예술 인프라가 더욱 확충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