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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4.13.(금) 19:30~

대구콘서트하우스 그랜드홀

처음 계획되었던 프로그램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곡이자 손열음 피아니스트가 협연한다고 해서 더욱 기대를 했었는데 3월 대구시향 정기연주회의 프로그램과 겹쳐서인지, 표를 예매한 후 프로그램이 멘델스존 피아노 협주곡 1번으로 변경되었다.

물론 3월 정기 연주회 때의 협연자였던 마르티나 피랴크와 마에스트로 코바체프, 대구시향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도 만족스러웠다. 마르티나 피랴크의 열정적인 연주와 대구시향의 훌륭한 서포트는 내가 이제껏 들은 대구시향의 그 어떤 협연보다 합이 잘 맞았고, 나는 관객석에서 미동도 않은 채 숨죽이고 듣고 있다가 끝나자마자 팔이 떨어져라 물개박수를 쳤더랬다.

그래서 이번 공연의 프로그램이 변경되었을 때 나는 다소 실망했다. 손열음과 니콜라이 즈나이더는 어떤 라흐마니노프를 들려줄까 기대를 많이 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들려준 멘델스존은 나의 이러한 실망을 한 번에 날려주었다.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이지만 이 날은 지휘를 맡은 니콜라이 즈나이더는 실제로 보니 굉장한 장신이었다. 포디움에 올라서지 않아도 그의 훤칠한 키 덕분에 오케스트라는 물론 뒷줄의 관객분들까지 잘 보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탄호이저 서곡이 끝나고 피아노를 들이느라 잠시 무대를 정리하고는 이윽고 조명이 밝아지고 손열음 피아니스트가 등장했다. 등을 시원하게 드러낸 다홍색 드레스를 입은 그녀가 무대에 나타나자 관객석에서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환하게 웃으며 화답한 손열음 피아니스트는 자리에 앉아 한동안 고개를 숙이고 집중하는가 싶더니 곧 지휘자에게 고개를 살짝 끄덕여 보였다.

긴장을 고조시키는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시작한 곡은 손열음 피아니스트의 현란하면서도 정확한 터치의 피아노 연주로 옮겨갔다. 나는 피아니스트의 손이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아있었는데 연주 내내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특히 1악장에서의 화려한 속주 부분에서도 음 하나하나가 망가지지 않고 명료하게 들렸는데 손열음 피아니스트가 그것을 너무 가뿐히 연주해내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속주부분에서 페달링으로 음을 뭉게가며 넘어가는 연주를 그다지 선호하는 편은 아닌데 그런 면에 있어서 모든 음을 또렷하게 들려주는 손열음 피아니스트의 연주는 만족스럽기 그지없었다. 이러한 연주 스타일이 곡에 활기를 더했고 그녀는 마치 봄날처럼, 화려하면서도 섬세하게, 낭만적이면서도 천진난만하게 멘델스존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해냈다.

여담으로 이 날 손열음 피아니스트와 니콜라이 즈나이더의 귀여웠던 순간.

보통 피아니스트들이 연주 중 많이 하는 제스처가 있다. 글로 표현하려니 좀 어려운데, 대표적으로 강렬한 타건으로 연주를 끝내면서 양손을 치켜드는 동작 같은 것 말이다. 손열음 피아니스트의 경우는 좀 독특했는데 협연 중에 피아노 연주를 마치면 팔꿈치를 접은 채 양팔을 앞뒤로 흔들흔들했다. 나로서는 처음 보는 제스처이기도 하거니와 그것이 마치 '나는 준비되었으니 언제든지 오라'는 사인처럼 보여서 보는 내내 엄마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니콜라이 즈나이더 또한 재치 넘치는 제스처로 관객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그는 마지막 곡인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1번이 끝나고 관객의 갈채가 끝없이 이어지자, 마지막으로 인사하면서 빨리 술 마시러 가야 한다는 것 같은 제스처를 해 보여 관객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그 타이밍에 지휘자가 손으로 원샷을 해 보였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아 걸어 나오면서도 실없는 사람마냥 피식피식 웃었다.

3일 간의 협연 중 개인적인 사정 상 단 하루만 볼 수 있어서 아쉬웠지만, 후회 없는, 소중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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