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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질은 나의 힘

그의 저력, 김선욱의 브람스

떠돌이 클덕 2019. 3. 14. 20:45

2018.09.07.(금) 19:30~

대구콘서트하우스 그랜드홀

어제 회식 자리에서 에어컨 바람이 너무 세다 싶었더니 아니나 다를까 몸살이 나고야 말았다. 아침부터 열이 오르고 온몸이 욱신거렸다. 그러나 기다려온 김선욱 피아노 리사이틀을 놓칠 수는 없었기에 감기약을 먹어가며 간신히 몸을 추슬렀다.

 

 

아픈 몸을 이끌고 기어이 공연장에 와 앉아 있으려니 이 열정으로 공부를 열심히 했으면 뭔가 큰일을 했을 거란 실없는 생각이 들었다. 몸살 기운만 좀 있을뿐 기침은 심하지 않았지만 혹여 연주에 방해가 될까싶어 기침약도 한 알 챙겨 먹고 사탕도 입에 물었다. 사탕이 반 쯤 녹았을 때 쯤, 사제복 비슷한 느낌의 흰 셔츠와 검은색 재킷을 입은 김선욱 피아니스트가 등장했다.

드뷔시 베르가마스크 모음곡 중 4번째 곡인 '파스피에' 는 내가 여태껏 들어온 것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 였다. 익숙하지 않은 느낌이었지만 거부감 보다는 신선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고 마지막에 가서는 왠지 모르게 설레기까지 했다.

브람스의 '헨델 주제에 의한 변주곡과 푸가'는 연주회를 기다리며 몇 번을 들었지만, 그다지 익숙해지지 못한 곡이었기 때문에 실연을 들어도 큰 감흥이 없을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김선욱 피아니스트의 저력있는 연주에 반하고 말았다. 처음에는 그냥 멀뚱히 앉아 있다가 점점 손에 땀을 쥐게 되더니 종반에는 두 주먹 불끈쥐고 마음 속으로 '가라! 김선욱!'을 외치게 되었다. 그가 연주하는 브람스는 마치 발이 푹푹 빠지는 눈길을 한 걸음 한 걸음 단단히 다져가며 묵묵히 걸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클래식 팬들 중에 왜 김선욱 피아니스트 마니아가 있는지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앵콜은 총 세곡으로 Brahms 6 Piano Pieces No.2 in A major Op.118 - Intermezzo, Schubert imromptu D.899 no.4, no.3이었다. 나의 연약한 눈물샘은 예기치 못한 인터메조 공격에 저항 한 번 해보지 못하고 함락 당했고, 덕분에 쿨쩍거리며 박수를 쳐야만 했다. 슈베르트 즉흥곡도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설득력 있는 -그러고 보면 난 참 설득당하기 쉬운 사람인 것 같다- 연주였다.

 

 

 
그의 연주에는 진득한 힘이 있었다. 듣고 있자니 나도 점점 기운을 얻는 것만 같았다. 우스개소리 같지만, 덕분에 몸살이 조금 나아진 것도 같은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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