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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흡입력 있는 작품이었다. 그 덕에 적지 않은 양임에도 불구하고 이틀만에 다 읽을 수 있었다.

소설은 노파, 금복, 춘희 세 명이 살아가며 겪은 얘기를 나열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모진 인생을 산 노파의 '세상에 대한 복수'라는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에 금복과 춘희의 이야기가 얽히고 섥혀있다.

너무 박색으로 태어나 평생 모진 삶을 살아온 노파나 도화살이 끼어 떠도는 삶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금복, 금복의 딸이지만 엄마에게서 살가운 애정 한 번 받아보지 못한 정신박약아 춘희의 이야기는 결코 밝지 않다. 그러나 전체 줄거리를 내레이션하듯 얘기해 주는 변사의 존재 덕에 분위기가 너무 가라 앉지 않는다. 내용만 놓고 보면 뭐 하나 좋은 일 없는 인생들에 대한 얘기지만 비극적이라기 보다는 어딘지 헛웃음이 나는 이유도 천연덕스럽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변사 때문일 것이다. 그의 존재는 독자들이 등장인물에 대해 어느 정도 감정의 거리를 유지할 수 있게 해주기도 한다.

어딘지 낯 익은 이야기들 사이에 말도 안되는 사건들도 간간이 끼여 있다. 춘희가 걱정의 자식이라는 사실이나 돌보아주는 사람도 없는데 몇 십년을 살아있는 개 등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이 이 소설의 세계관에서는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이 일어난다. 재미있는 것은 나 또한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라면 저런 일도 있겠거니'하며 자연스럽게 수긍해버렸다는 점이다. 판타지와 현실의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들어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점은 그 만큼 이야기가 설득력을 갖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이 대부분 그러한데, 이 작품에서도 그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읽는 내내 혀를 내두른 점은 이야기가 끊임없이 술술 이어진다는 점이었다. 작가가 이 작품을 집필하면서 어떤 부분에서 막혔고, 어떤 부분에서 고민을 했을지가 감도 안 잡힐 정도로 타고난 이야기꾼이 일필휘지로 써내려 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 작품을 읽는 사람 누구나 마치 마술과도 같은 그의 필력에 매료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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