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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6.27.(목) 19:30~

대구콘서트하우스 그랜드홀

 

습관이 되어서인지 피아노 협연이 없는 공연의 티켓팅을 할때도 왼쪽으로 치우친 자리를 선택할 때가 많았다.

그런데 이번 공연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피켓팅이었던 탓에 어쩌다보니 중간에 앉게 되었다.

피아노 건반은 보이지 않아도 오케스트라가 내는 소리는 잘 들릴 것이라 스스로를 위로했었는데 이게 신의 한 수가 될 줄이야.

소름이 돋는다는 것은 이런 것, 정말이지 엄청난 공연이었다.

 

관객들의 기대에 찬 박수 속에 지휘자 이반 피셔가 등장했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통역사를 대동하고 나타난 그는 한국인들도 많이 희생된 다뉴브강 유람선 사고를 진심으로 애도한다고 한 마디 한 마디 진심을 담아 말했다.

그리고는 그의 지휘 하에 희생자와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희생자와 그 유가족들에게 바치는 추도곡으로  우리 나라 가곡 '기다리는 마음'을 불렀다.

박수를 치지 말아달라고 미리 언급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 처연한 가사와 애끊는 분위기에 압도되어 곡이 끝나도 움직이거나 소리내는 사람 하나 없었다.

 

 

이런 적막 속에서 과연 멘델스존 한여름밤의 꿈 서곡이 가당키나한가 싶었는데, 연주가 시작됨과 동시에 분위기가 삽시간에 바뀌었다.

이 곡은 이번 공연을 기다리며 예습을 할 때 가장 흘려 들었던 곡이었는데, 실연으로 들으니 한층 느낌이 달랐다.

그리고 십여분의 짧은 곡이었지만 지휘자와 오케스트라의 기량을 알기에는 충분했다.

단원들의 탄탄한 연주력을 바탕으로 한 이반 피셔의 지휘는 거칠 것이 없었다.

그는 발랄하고 장난끼 가득하면서도 환상적인 곡의 분위기를 충분히 살려 장내 분위기를 순식간에 사로잡았다.

플루트와 팀파니가 곡을 마무리 할 때까지 정말 한바탕 꿈이라도 꾼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음이 아스라이 스러질 때 아쉬운 마음에 손을 뻗어 곡의 끄트머리를 붙잡고 싶기까지 했다.

 

두 번째 곡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1번이었다.

조성진 피아니스트의 공연은 작년 안산 공연 이후였는데 어쩐지 살이 더 빠진 것 같았다.

오랜만에 들었지만 섬세한 강약 표현과 완벽에 가까운 테크닉은 변함이 없었다.

역시 엄청난 지지를 받는 피아니스트답게 연주가 끝났어도 박수는 그칠 줄 몰랐고, 조성진 피아니스트는 앵콜로 두 곡을 더 연주한 후에야 무대를 내려갈 수 있었다.  

 

 

마지막 곡은 브람스 교향곡 1번.

여태껏 웅장한 1악장 도입부나 환희에 찬 4악장이 이 곡의 백미라고 생각했는데 오늘 그 생각이 완전히 깨졌다.

물론 거대하고도 비장한 분위기를 잘 살린 곡의 도입부도 탁월했지만 내가 허를 찔린 것은 2악장부터였다.

오보에, 플루트, 클라리넷 주자들의 뛰어난 기량 덕에 그들이 엮어 내는 아름다운 선율에는 흠결이 없었다.

마치 음 빚기 장인 같은 목관주자들의 표현력 덕분에 2악장을 듣는 내내 황홀감에 젖어 있었다.

폭풍의 플루티스트, 폐활량 갑 오보이스트, 내 귀에 꾀꼬리 클라리네스트

집중해서 감상하는 동안 3악장도 마치 찰나의 순간처럼 끝나버리고 순식간에 돌입한 4악장.

2,3악장이 삽시간에 끝난 것에 경악할 새도 없이 곡은 서서히 클라이막스를 향해 갔다.

연주 내내 압도적인 음량을 자랑하던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지만, 곡이 마지막을 향해 갈수록 더욱 더 거대한 에너지를 뿜어 냈다.

벌써 끝낼 수는 없다는 아쉬운 마음도 잠시, 그들이 만들어 낸 거대한 세계 속에 오롯이 들어와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마치 초신성의 폭발이라도 목격한 마냥, 눈이 멀 정도로 밝은 빛과 가늠할 수 없는 에너지 가운데서 넘쳐 흐를 듯 벅찬 환희를 느꼈다.

마에스트로 피셔 또한 경이로웠다.

그는 브람스 교향곡 1번이 가진 드라마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표현해 냈으며, 잔꾀 부리지 않고 세심히 공을 들여 곡을 완성해 갔다.

곡이 끝날 보여준 그 에너지는 이반 피셔의 그런 노력의 결실이었을 것이다.

 

연주가 끝나도 감동은 쉬이 가시질 않았고, 나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일어서서 인사할 때마다 환호성을 지르며 팔이 떨어져라 박수를 쳤다.익룡 등장

정말이지 기억 속에 오래 남을 훌륭한 공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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